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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전환

쉐로모 2005. 11. 26. 02:42
방향전환 막5:25-34 1. 방향전환이 기적을 낳는다. 운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야구에선 방망이의 방향만 잘 맞추면 안타 내지는 홈런이 나오게 되어 있고, 축구에서도 볼의 각도만 정확하면 골을 넣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볼링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의 방향이 중앙에 있는 핀을 향하여 들어가기만 하면 힘이 별로 없어도 스트라이커가 나올 확률은 대단히 높아진다. 운동에서처럼 우리 인생에서도 방향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방향전환이 기적을 낳는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잘 말해 주고 있다. 12년 동안이나 하혈의 불치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의 인생이 갑자기 180도로 바뀌어져 버렸다. 왜일까? 그녀의 세상적인 조건이나 환경에서는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다. 좋은 의사를 만난 것도 아니요, 갑자기 돈이 많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삶은 세상의 그 어떤 조건들도 만들어 줄 수 없는 최고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녀가 한 것은 한가지밖에 없었다. 단지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다. 온 세상을 헤매며 살길을 찾던 그녀가 예수님께로 그 방향을 바꾼 것 밖에는 없었다. 그랬더니 그녀의 불치병은 한 순간에 나음을 입었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 인생은 왜 암울할까? 내 인생은 왜 캄캄할까? 원인은 내게 있다. 내가 햇빛을 등지고 서 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방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남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햇빛을 등지는 내 인생의 방향이 만든 것이다. 따라서 내 앞에 보이는 그림자는 다른 누구도 해결해 줄 수가 없다. 인생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가? 절대로 남의 탓하지 말라. 자기 그림자는 자기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남의 그림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림자가 있으면 피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자기 그림자는 어느 누구도 피할 수가 없다. 세상 끝까지 따라다니는 것이 그 사람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그림자를 간단히 안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빛 쪽으로 돌리면 된다. 인생의 참빛인 예수님께로 돌리면 간단히 해결된다. 12년 동안이나 혈루병을 앓던 이 여인처럼 말이다. 인생이 힘드는가? 우울한가? 캄캄한가? 인생의 방향을 한번 바꾸어 보라. 인생의 어두움을 보지 말고 인생의 빛을 보도록 하라 부정적인 면을 보지 말고 긍정적인 면을 보라 불만적인 면을 보지 말고 만족한 면을 보라 불행한 면을 보지 말고 행복한 면을 보라 이것이 바로 인생의 방향전환이다. 사람은 보는 것에 따라 그 마음이 지배된다. 그늘만 보는 사람은 그 인생이 늘 그늘져 있지만, 빛만 바라보는 사람은 그 마음도 늘 밝고 소망이 넘치는 법이다. 히말라야를 31번 도전해서 18번이나 등정에 성공한 박영석씨는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세계 최초의 산악 그랜드슬램 달성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믿음의 사람은 99%의 불가능을 보고 절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1%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사람이다. 쥐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물통에 물을 담아서, 전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곳에서 쥐 한마리를 빠뜨렸더니 3분만에 익사해 버렸다. 그런데 동일한 물통, 동일한 장소에 단지 한줄기 빛만 비추어주며 다른 쥐 한마리를 빠트렸더니 자그마치 36시간이나 살아 남았다고 한다. 한 줄기의 빛이 약 700배나 되는 큰 능력을 발휘하게 한 것이다. 빛을 바라보자. 우리에게 소망은 이렇게 큰 힘을 준다. 세상 어디에나 소망의 빛과 절망의 그림자는 공존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절망의 그림자가 없는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있는 소망의 빛을 바라보는 것이다. 12해 혈루증 여인처럼 말이다. 이 땅의 빛 중의 빛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어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처해 있더라도 믿음의 눈으로 예수를 바라보는 자는 반드시 산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렸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믿음으로 놋뱀을 바라본 자들은 다 살아났듯이 말이다. 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계신다. 나의 어떤 질병도, 못된 버릇도, 가족의 문제도, 일의 문제도, 공부의 문제도... 모두 그 분의 손안에 있다. 이 주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렘32:27)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찾고 계신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하나님의 능력을 입기를 원하는가? 방법은 한가지다. 전심으로 주님께 향하는 자가 되면 된다. 능력은 내게 있지 않다. 그 분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인생의 방향을 그 분께로 향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분의 능력의 빛이 우리 온 인생을 비추어 주실 것이다. 인생은 그 사람의 방향에 의해서 결정된다. 주님과의 각도가 얼마나 뒤틀려 있는가? 주님과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 방향전향만이 살길이다. ‘주여! 내가 세상에서 주님께로 온전히 ‘전향’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주님의 계산 공식 주님은 혈루병 여인에게 왜 후한 점수를 주셨을까? 오늘 본문의 이 여인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는 절대로 그 무리 중에서 1등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 여인보다 훨씬 더 예수님께 가까이 가서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겨우 무리들 틈에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것이 고작이었다. 그 흔한 믿음의 고백도 한마디 없었다. 여인의 이 행동이 얼마나 미비했던지 제자들 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예수님도 능력이 나간 후에야 그녀가 손을 댔다는 것을 알았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최고로 인정하시며 축복해 주셨다. 물론 그녀가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어리라’고 생각한 마음도 귀하지만 만약 이 여인이 예수님 앞에 충분히 나아갈 수 있는 상황인데도 뒤에서 주님의 옷가에만 손을 대고 말았다면, 과연 예수님이 이 여인의 믿음에 감동을 받았을까? 아니다. 주님의 계산 공식은 우리와 다르다. 세상에서는 무리 중에 1등한 사람을 칭찬하고 상을 준다. 그리고 꼴찌한 사람에게는 설움과 푸대접만 기다리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상황은 전혀 고려해 주지 않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남을 앞서지 못한다고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해 버린다. 내가 만약 혈루병 여인의 처지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 때 예수님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급히 길을 가고 계셨다. 그리고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런데 내 모습은 어떤가? 12년 동안이나 병으로 고생하는 여인이었다. 일반적으로는 포기해야 마땅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였다. 남들과 비교하면 보잘 것 없는 행동이지만 그녀 자신에게는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계산법에서 고득점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세상은 남들과 비교해서 나를 평가하지만 예수님은 나의 상황과 비교해서 나를 평가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계산법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여인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세상의 1등이 주님 안에서 반드시 1등이 되는 것도 아니요, 세상의 꼴찌가 주님 안에서 꼴찌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여인처럼 세상의 꼴찌가 주님 안에서는 1등이 될 수도 있다. 주님의 계산법과 세상의 계산법은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의 계산법={나의 행동/남들의 능력}*100(%) : 불공평함 주님의 계산법={나의 행동/나의 능력(여건)}*100(%) : 너무나 공평함 남들과 비교해서 낙심하는 자는 정말 한심한 사람이다. 주님은 지금의 내 자신과 비교해서 나를 공정하게 평가하시기 때문이다. 날마다 자신의 여건과 자신의 행동을 비교하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내 인생은 남의 여건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자신의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위의 공식으로 이 여인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 여인이 한 행동 즉, 분자의 수치는 별로 대단하지 않았다. 이 점수 만으로는 분명히 하위 점수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무리 중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왜 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의 여건인, 분모의 수치가 너무나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점수는 최고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운 환경을 원망한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냐고 하면서 아예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생각을 해보라.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전 재산이 200원인 사람과 200억원인 사람 중에 누가 전재산을 다 내 놓기 쉽겠는가? 당연히 200원 가진 사람이다. 이 사람은 주님 앞에 쉽게 100점을 받을 수가 있다. 따라서 어려운 환경은 오히려, 주님 안에서는 나의 분모를 작게 해 주므로 이 여인처럼 믿음의 스타로 뜨기 쉬운 절호의 찬스임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를 절대로 남과 비교하는 법이 없다. 오직 지금의 내 여건과 나를 비교하실 뿐이다. 따라서 우리도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늘 자신과 비교하여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주님의 칭찬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요, 고득점자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남과 싸워서 이길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환경과 싸워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자임을 혈루병 여인은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