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이 되어 조교를 맡은 학생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학부 때는 교수가 무척 한가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무지하게 바쁘다는 것이다.
교수마다 다 같지는 않겠지만, 대개 그렇다. 다들 바쁘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겸연쩍지만, 난 그중에서도 더 바쁜 축에 속할 것 같다.
강의도 늘 많이 하고, 보직도 여러 가지 맡고 있다.
여기저기 시민단체와 연구모임, 학회에 참석하고,
프로젝트나 특강을 하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방학에도 항상 출근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대개는 연구실에 나온다.
건강관리를 좀 해야 하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안부를 물을 때마다 나는 버릇처럼 대답했다.
"네, 그렇긴 한데 너무 바빠 시간이 없어서요."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 생활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너무 바빠서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다고,
적어도 박경철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을 때까지는 그랬다.
외과의사이면서 '시골의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경제평론가 박경철씨는 대단한 분이다.
그의 한마디에 수십만 명이 주식을 매매하고 통장을 바꾼다.
그런 만큼 그는 참 바쁜 사람이다.
매일 아침 2시간씩 라디오 방송, 주1회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인이고,
신문과 잡지에 고정칼럼만 15개를 쓰는 칼럼니스트다.
전국을 누비며 해야 하는 강연이 월 평균 30건이고,
토요일엔 반드시 안동의 병원에 내려가 본업인 진료를 한다.
친구와의 오랜 약속 때문이란다.
더구나 그는 매년 1-2권의 책을 펴내는데, 그냥 가벼운 책이 아니라 항상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깊이 있는 저서들이다.
비결이 뭘까?
한 사람이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 수준의 1인 4-5역을 소화한다.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분석이 필요한 독서와 사색의 시간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것일까?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엥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2000년 0시를 기해 전 다섯 가지를 끊었습니다.
술, 담배, 골프, 유혹, 도박입니다.
이중 금연이 마지막까지 잘 안되더군요.
그래도 술안먹고 골프안하고 딴 마음 안먹으니까 시간이 많이 남아요.
TV는 원래 안보았고요.
그 시간에 책보고 글쓰고 하는거죠.
책은 하루에 한권 정도 읽어요.
화장실, 이동하는 차 안, 토막시간마다 책을 펼치죠.
매년 10월에 책 한 권씩 내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매일 200자 원고지 20-30장 분량의 글을 써서 저장해둡니다.
이렇게 생활하다 보면 1인 다역을 할 수 있어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시간없다'입니다."
나는 특히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시간없다'입니다."
우리는 왜 시간이 없을까?
박경철씨 말대로 술 마시고, 골프치고 (그대들의 경우에는 게임이나 인터넷 서핑에 해당할 것이다),
이런 저런 유혹들과 일시적인 이득에 관심을 가지느라
누군가는 저토록 알차게 사용하는 황금같은 시간을 다 날려 버리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랫다.
내가 시간이 없는 이유의 태반이 그런 것이었다.
인정한다.
허투루 흘려보내고, 그냥 때우는 시간이 수두룩한데도 '요새 너무 바쁘다'고 엄살을 떨어왔다.
지금 이 글을 읽는 그대는 어떤가?
혹시 '시간없어서' 반드시 해야할 일을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공한 사람의 하루는 25시간, 실패한 사람의 하루는 23시간'이라고 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는 별 게 아니다.
결국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썼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시간관리를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방법을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앞서 말했듯 나도 시간관리를 아주 잘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스스로 시간을 통제해야 하는 교수라는 직업을 10년 넘게 하면서
터득한 노하우가 몇가지 있어 그 이야기를 간략히 들려 드릴까한다.
1. 시간관리란 목표의 함수다
흔히 시간관리를 잘한다고 하면, 치밀한 계획표를 짜고 그것을 잘 실천하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 계획표를 짤것인가,
즉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관리란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아무 일 하지 않는 것이 무조건 죄악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플 때는 푹 쉬는 것이 다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
일단 건강을 되찾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영어공부 몇 시간, 운동 몇 시간 하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구성하는
'계획을 위한 계획'은 의미도 없을 뿐더러 중간에 포기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므로 시간관리를 할 때 우선 구체적이고 분명한 목표를 세워라.
그리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라.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는 식의 우유부단함은 삶의 방만을 부른다.
시간관리란 무엇인가를 용기있게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포기는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니 할 일을 결의하기에 앞서, 포기할 것을 먼저 정해라.
곁가지가 많으면 큰 나무가 되지 못한다.
시간관리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여기저기 곁으로 쓰는 시간이 많으면 큰 꿈을 이룰 수 없다.
봄이면 정원사들이 거침없이 가지치기를 해주듯, 우리의 시간도 냉정한 구조조정을 해줘야 한다.
2. 의미 없는 습관으로 굳어진 취미는 청산하라
시간관리란 목표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는 일이며,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할까?
의미 없는 습관으로 굳어진 취미,
말이 좋아 취미지 실은 '시간 때우는 작업'으로 변질된 것부터 청산해야한다.
알게 모르게 시간을 훔쳐가는 시간도둑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도둑을 잡지 못하면 우리의 시간 곳간을 튼실하게 채우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버릇이 들어 하게 되는 행동, 다른 대안이 없어 하게 되는 행동
그리고 다른 사람 때문에 할 수 없이 하게 되는 행동이다.
이 중에서도 첫 번째 행동,
즉 버릇이 들어 하게 되는 중독된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또 중요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온갖 이유를 들어 자신을 합리화하기 때문에 가장 고치기 어렵다.
하지만 내게 없던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기존의 습관을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특히 시간을 사용하는 중독된 습관을 가장 먼저 바꿔야한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에는 대부분의 남학생이 당구에 빠져 있었다.
당시 대학가에는 한 집 걸러 당구장, 두 집 걸러 술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나도 당구장으로 등교했다가 수업시간이 다 되서야 허둥지둥 교실로 향한 적이 많았다.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큐를 잡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만둘 수 없어서 치게 된다.
당구가 나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재미에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예외가 없는 것일까?
처음에는 좋아서 했던 일들이 차츰 의미없는 습관으로 변질된다.
그런데도 몸에 익어버려서, 어느 순간부터는 중독돼서 끊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 참 적지 않은 액수의 용돈을 당구장에 갖다 바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도 돈이지만, 그 시간들이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다.
버릇으로 굳어져 끊지 못해 들렀던 당구장,
막상 큰 즐거움도 주지 못하고 내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했던,
그저 버려진 시간들….
요즘 학생들에게는 웹서핑이나 게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줄이고, 끊어라.
특히 게임은 반드시 끊어라.
훗날 돌이켜봤을 때 청춘의 시간을 허비한 후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의미 없는 습관으로 굳어진 취미를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란 식의 변명으로 감싸지는 말라.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것은 성장하는 즐거움이다.
성장에 꼭 필요한 양분인 '시간'을 빼앗는 일이 즐거움의 원천이 될 수는 없다.
그냥 때우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존재의 두께는 얇아진다.
무의미한 반복이 계속되는 취미, 혹은 시간 때우기를 당장 그만둬라.
다음은 내가 되도록 하지 않으려는 행동, 되도록 하려는 행동을 정리한 리스트의 일부다.
그대들에게 참고가 될까 하여, 실어보았다.
게임보다는 독서를,
인터넷 서핑보다는 신문 읽기를,
TV시청보다는 영화 감상을,
공상보다는 사색을,
수다보다는 대화를,
골프보다는 빨리 혹은 느리게 걷기를,
다이어트보다는 운동을,
사우나보다는 반신욕을,
늦잠보다는 피로를 푸는 토막잠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닌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술을 택한다.
3. 15분은 길다
조금애매한 시간들이 있다.
한 15분 정도 남은 시간 뭔가 새로하기는 귀찮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는 조금 지루한 시간,
오지 않는 친구를 기다리거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
수업 시작 전 잠깐의 여백…
그대는 이런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
아무 스케줄 없는 여백이 몇 시간씩 된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럴 때는 자연스럽게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요즘 사회는 바쁘다.
끊임없이 약속이 생기고 어딘가로 이동해야 한다.
뭉텅이 시간이라곤 없이 조각조각 토막난 자투리 시간만 남게 되는 것은 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의 보편적 특징이다.
그런 사회에서 결국 시간관리란 곧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의 동의어다.
충분한 시간이 날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틈틈이 나는 작은 시간을 끌어 모아야한다.
내가 가장 먼저 실천하겠다고 마음먹고 세운 것은
'15분 내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바로 해결한다'는 원칙이다.
이따가 해야지, 하고 생각한 것 치고 이따가 제대로 한 적이 별로 없다.
지금 하기 싫은 일은 이따가도 하기 싫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금 끝내고 잊어버리는 편이 스트레스가 적다.
그런데 이런 방식에도 단점이 잇다.
매사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다 보면
중요한 일보다 귀찮은 일을 먼저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은 뭘 하기 애매한 자투리 시간에 주로 한다.
테트리스 조각을 맞추듯 빈틈을 자꾸 없애다 보면
몰입할 수 있는 한 덩어리의 시간이 제법 생긴다.
그러니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토막내기 쉽고 반복적인 것이 좋다.
내 경우에 애매한 시간에는 주로 잠을 청하거나 신문을 읽는다.
잠자는게 나는 제일 좋다.
일단 눈을 감고 선잠이라도 자려 노력하고, 정 잠이 오지 않으면 신문을 읽는다.
그대에게 '15분 이상 시간이 나면 영어단어라도 외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조금씩 조금씩 부서지는 시간을 속절없이 흘려보내면서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대지 말라는 것이다.
자투리 시간에 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것 중 하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자신과 대면하는 일은
자신의 역량을 어떤 방향으로 길러나가야 할 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중요하다.
많은 청춘들이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그러고는 다들 쇼핑하듯이 유행하는 스펙을 쌓느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주워담는다.
그래서 항상 바쁘게 열심히 생활하고 스펙도 제법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주변 경쟁자들과 별로 차별화되지 못한다.
철저한 자기와의 대면이 없으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목표의식도,
지금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대한 현실인식도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꼭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깊은 사색에 빠져야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찜질방 사우나에 들어가 얼마나 버텨보았는가?
15분은 무지하게 긴 시간이다.
1-2시간 이상 긴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자투리 시간을 잘 써라.
4. 바빠야 시간이 난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반드시 할거다!"
이렇게 말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정작 여유가 생겼을 때, 계획하던 그 일을 제대로 한적이 있었는가?
나만 해도 그렇다.
고등학교 때 대입준비로 한창 바쁘니까,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았다.
대학만 가면 책도 많이 읽고, 피아노도 다시 시작하고, 사진도 찍고,
어쩌고 저쩌고, 다이어리에 정말 빼곡이 할 일을 적었다.
하지만 정작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혹은 아무일이 없던 고3 마지막 겨울방학조차도, 제대로 한 일이 없었다.
이런 일은 선생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전 방학에는 미루었던 번역작업을 꼭 해야지."하고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조금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이내 개강이다.
그대는 어떤가? 나만 그런가?
가만히 보면 그대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휴학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을 만나 얼마나 보람 있게 보냈느냐고 물어보면, 대체로 대답이 같다.
"그냥 후딱 시간이 가버리던데요? 별일도 못했어요."
비단 휴학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분명 한가한 기간인데, 오히려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많은 사람에게 반복되는지 생각해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바빠야 오히려 시간이 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렇다.
바빠야 하고 싶은 일의 소중함이 비로소 절실해진다.
더욱 중요한 점은 바빠야 생활이 치열해져 시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시간이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가할수록 쓸 수 있는 시간은 더 생길지 몰라도
치밀한 시간관리의 의지가 함께 줄어들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그리고 사실 생각해보면 '한가한 시간'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
한가하다는 것은 급하게 혹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의미일 뿐이다.
하지만 '백수가 과로사하는' 세상이다.
여기저기 시간도둑을 잡지 못하면
시간은 많았는데 한일은 없는 황당한 경우가 계속 반복된다.
바쁜 때가 오히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좋을 때다.
나중에 한가해지면 하겠다는 생각은, 결국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유보의 구실이다.
가장 바쁠때 시간을 쪼개 '그 일'을 시작하라.
그렇다. 바로 지금 말이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하지 못한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시간은 우리 영혼을 만드는 재료라고 햇다.
시간이 전부다.
그대의 내일은 오롯이 오늘의 24시간에 달려 있으므로
그대의 시간은, 어쩌면 그대보다 소중하다.
지금의 그대는 미래의 그대에게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가?
시간을 그렇게 사용하라.
미래의 그대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김난도 / 아프니까 청춘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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