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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명사를 성공 인생으로 이끈 사람들.....

쉐로모 2010. 10. 4. 13:13
 

명사를 성공 인생으로 이끈 사람들

** 인생에서 외롭고 추워졌을 때, 너무나 힘들어서, 살아갈 만한 희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바로 그때에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여성일 수도 있고 남성일 수도 있으며, 우리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아주 가까이 있는 가족에서 시작해서, 친구, 직장 동료, 학교 선생님 등이 삶의 등불이 되어 준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성공한 인물들로 하여금 어려운 시기에 멈추지 않고 도전토록 했던 사람들을 찾아본다. **

* 인생 최고의 친구, '가족'

30년 넘게 일해 온 회사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가 달라'는 선고를 받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 가? 이 같은 일을 당하고 나서, 망해 가는 다른 회사의 CEO로 부임해, 쓰러져 가는 사업의 불씨를 되살린 인물이 있다. 바로 크라이슬러의 전 회장인 리 아이아코카다.

아이아코카는 포드자동차에 젊은 시절을 바쳤지만, 32년 동안 재직했던 그 회사는 그를 해고했다. 평생을 몸담고 싶어했던 곳이었기에 그는 부당한 퇴직 명령을 받고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화가 났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응원해 주던 아내, 메리가 있었기에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었다.

"여보, 너무 화만 내지 말아요. 평정심을 찾고 이젠 되갚아 주세요."

아내는 아이아코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스트레스에 억눌리고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되었을 때, 메리는 화를 내는 것 대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라고 얘기했던 것이다. 이 말은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낸 그는, 포드에서 쫓겨난 지 4개월 만에 크라이슬러의 최고경영자로 부임했다. 그리고 크라이슬러 역사상 '전설적인 CEO'가 되었다.

* 삶의 길을 찾아 준 스승

네모난 뿔테 안경과 멜빵, 편안한 말투가 트레이드마크인 래리 킹. 그는 미국 마이애미의 한 라디오방송에 주급 55달러짜리 토크쇼 진행자로 방송을 시작한 뒤로 40년 넘게 토크 쇼 진행자 일을 해왔다. 1985년부터 시작한 <래리 킹 라이브>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CNN의 간판 토크쇼로 자리 잡고 있다. 래리 킹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진행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대학교육도 받지 못했고, 우체국 직원 따위의 갖가지 직업을 떠돈 경험이 있다. 또, 개인적으로도 불행했다. 일곱 번 한 결혼 가운데 다섯 번은 이혼으로, 한 번은 결혼무효로 끝났고, 절도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고, 파산 선고를 받은 경험도 있다. 한때 킹은 마이애미 해럴드 신문사에서 매주 칼럼을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된다. 얼마 뒤에는 35만 달러 빚을 갚지 못해서 파산 신청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루하루는 지옥처럼 힘들었다. 이처럼 실타래처럼 무수히 엉킨 인생 역정 가운데 그에게 힘을 준 친구는 펌페닉 델리카트슨의 사장인 찰리 북바인더였다.

북바인더는 힘들어하는 킹에게,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인터뷰를 해보라고 제안했다. 레스토랑에서 누구를 만나 도대체 무슨 인터뷰를 하란 말인가?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만나 얘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던 킹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때 그가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일반인들, 아니, 정확히는 레스토랑에 있는 이들이었다. 여자 직원, 웨이터, 그리고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손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웃기도 하고 감동하며 킹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란 사실을. 또, 정직과 편안한 마음, 그리고 상대방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대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다. 나중에 CNN의 진행자가 된 그는 고르바초프, 푸틴, 마거릿 대처, 토니 블레어, 말론 브랜도, 프랭크 시내트라, 빌 클린턴 등 세계의 유명 인물들은 모두 다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

세계 2위 갑부인 워렌 버핏. 그의 재산은 460억 달러쯤 되는데,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주식의 달인인 그도 한때는 돈이 없어 힘든 적도 있었고, 투자에 실패한 경험도 있다. 이런 그를 오늘날의 위치로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 사람은, 그의 스승이자 가장 좋은 친구인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다.

"워렌, 무슨 일을 해도 마찬가지네. 맞는 주장을 하려면,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와 논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네. 다른 사람이 모두 '맞다'고 해도, 자네가 생각하는 사실이 옳지 않으면 투자하지 말아야 하네."

스승의 말은 그대로 평생 버핏의 주식 투자 기준이 되었다.

사실 그레이엄도 1929년 대공황 때 돈을 모두 잃어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고, 자신을 믿고 돈을 맡긴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손해를 입힌 적이 있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검토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데이비드 도드 교수와 4년 동안 열심히 연구한 끝에 1934년 <증권 분석>이란 책을 냈고, 이후 5년 동안은 고객들이 원금을 회복할 때까지 돈도 받지 않고 일한 경험이 있다. 당시의 생생한 경험이 그레이엄을 가치투자에 주목하게 했고, 이것을 다시 제자인 버핏에게 전수해 주었던 것이다.

링컨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열아홉 살 때에는 결혼한 누나가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스물세 살에는 주 의회 선거에 나갔지만 패배했고, 친구와 함께 잡화상을 운영했지만 1년도 안 되어 빚만 잔뜩 떠안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스물여섯 살 때에는 사랑하는 약혼녀가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 한동안 깊은 절망에 빠져 지내야 했다. 2년 뒤에는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정치가로서 그의 도전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에 각각 두 번씩의 낙선을 경험해야만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실패에도 링컨은 포기하지 않았고, 1860년에 쉰한 살의 나이로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런 링컨에게 평생을 살아갈 힘을 준 친구는, 초등학교 때의 선생님인 그래함이다. 링컨은 비록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는 바람에 정규 교육은 겨우 9개월밖에 받지 않았지만, 그때 만난 그레이엄 선생님에게 읽기와 쓰기, 문법을 배웠고, 독서를 좋아하게 되었다. 링컨은 책에 빠져 살면서, 명문대학을 나온 이들보다 더 깊은 지식을 갖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 날, 평생의 멘토요 스승이며 친구인 그래함을 불러 고마움을 전했다.

* 회사의 성장은 젊은 시절의 친구와 함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애플컴퓨터),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휴렛패커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구글), 채드 헐리와 스티브 첸(유튜브)은, 가난했지만 젊음이란 열정 하나만으로 친구와 함께 차고에 사무실을 열고 사업을 시작했고, 마침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CEO가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립한 빌 게이츠와 폴 앨런 또한 중고등학교 때부터 죽마고우였고, 현재 CEO로 일하는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대학 친구다. 앨런은 게이츠와 의견 충돌을 벌이면 늘 먼저 사과했고, 발머도 친구를 위해 자신을 낮췄다. 또, 게이츠와 앨런은 자신의 주식을 나누어서 다른 창업 공신인 직원들에게도 주었다. 이런 제도로 말미암아 직원들은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되었다.

빌 게이츠가 대외적인 업무를 보는 동안 스티브 발머는 안살림을 제대로 했다. 최고의 인재를 찾아내야 한다는 게이츠의 철학을 바탕으로 헝가리 출신의 천재 프로그래머 찰스 시모나이를 영입했고, 다시 리처드 브로디까지 찾아냈다. 뛰어난 지능과 에너지와 추진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였기에 회사는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죽마고우, 다른 한 사람은 대학 시절에 만난 친구. 돈을 벌면 달라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하는데, 세 친구는 평생의 사업 파트너이자 30여 년을 쌓아 온 우정으로 서로 믿으며 세계 최고의 회사를 만들었다. 각자가 개인적으로도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자신의 영역에서 최상의 결과를 보여준 결과다.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자리를 동료이자 친구이며 사업 파트너인 발머에게 넘겨주었고, 최근에는 회사를 은퇴하고 자선 사업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사업에 성공한 이후, 앨런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게이츠는 자선 사업을, 발머는 회사 경영을 계속해 가고 있는 것이다.

구글의 공동 창립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이들은 둘 다 1973년생으로, 아직 젊다. 하지만 두 사람은 번뜩이는 기지로 미국은 물론 세계 인터넷 업계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구글의 시장가치는 2006년 1월 말 기준으로 무려 1,309억 달러로, 전통의 글로벌 기업인 인텔의 시가총액보다 많다.

"뭐, 네 의견이 맞다고? 이걸 한번 보라니까."

스탠퍼드 대학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별로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페이지나 브린 모두 개성이 강한 편이었고, 자신의 분야에서는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티격태격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대학원 논문을 쓰려고 관련 자료를 검색하던 페이지와 브린은 무작위로 아무렇게나 쏟아져 나오는 정보 때문에 도저히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인터넷 검색을 포기하고, 도서관에서 원시적인 방법으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르게이, 안 되겠어. 아예 우리가 새로운 검색엔진을 만들어 보자."

언제나 이견을 보이던 두 친구가 이번에는 마음이 통했다. 그들은 먼저 각 사이트를 링크로 걸 만한 가치가 있는지부터 판단하면서 우선순위를 매겨 갔다. 기존의 검색엔진은, 한 단어를 치면, 그 검색어가 포함되어 있는지만 조사했다. 그래서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웹사이트 수천 개가 나열돼 시간만 낭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필요한 웹페이지만 링크해 나가는 󰡐페이지 랭크󰡑는 꽤 유용했고, 이 방법은 나중에 구글 검색의 기본 바탕이 될 수 있었다.

구글의 첫 번째 사무실은 페이지의 여자 친구 집 차고였다. 재미있는 것은, 애플컴퓨터의 스티브 잡스도, 휴렛패커드의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도 차고에서 출발해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한 구글은 창립 2년 만에 하루 1,800만 건의 검색을 하는 미국 최대 검색 사이트로 급성장했다

 

출처 : 석세스 파트너

출처 : 왕비재테크
글쓴이 : 신이라불리운사나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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