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힘/생각이있는글(펌)

[스크랩] 약속 어음

쉐로모 2009. 5. 10. 19:29

2학기가 되면서 아그들이 많이 달라졌다.

좋게 말하면 아주 활동적이고 자기 생각이 뚜렷한 아그들로 바뀌었고

나쁘게(?) 말하면 무지 별나지고 정신없이 수다스러워 졌다.

물론 여기엔 나의 몫도 크다는 걸 인정한다.

같이 장난치고 농담하고 하니까 이제는 이녀석들이 나를 잡아 먹으려고 한다.

며칠 전부터

"야~들아, 너그 요새 와 이러는데?"

"정신은 오데다가 갔다 버맀노?"

잔소리를 해 댔지만 별로 달라질 기미가 없다.

 

그래?....

그렇다 이말이지?.....

이쯤에서 나는 나의 비장의 무기를 꺼낼 수 밖에 없다.

바로 녀석들로 부터 받은 "약속 어음" 이다.

아...물론 어음 결제일은 30년이나 남았다.

그렇지만 녀석들이 항상 기억할 수 있게 한번씩 주의를 환기 시켜줘야 한다.

바로 그 약속 어음을 나는 오늘 꺼내서 아그들 얼굴에 들이 밀었다.

 

 

 

 

보약에 흔들 의자에 심지어 '한국 민속촌'을 나에게 주겠다고 한 녀석도 있다.^^*

 

 

 

 

녀석들로부터 받을 흔들 의자와 소파를 다 들여다 놓으려면 집이 무지 커야 할 것 같다....

 

 

 

 

으음... 이 녀석은 예쁜 옷에 갈비 세트... 그리고 족욕기...  아름다운 꽃도 있다.

 

 

 

 

눈 맛사지기에 늙으면 잡티 보인다고 화장품까지... 녀석들 지금도 잡티 있는 줄 어찌알고..ㅎㅎ

게다가 직접 끓인 죽까지....

 

 

 

 

우리반 이쁜이는 이다음에 선생님이 되어서 나에게 자기 수업하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단다.

에구... 그때까지 눈도 잘 보이고 소리도 잘 듣고 해야 할텐데... 걱정이다.

 

 

 

뒷면에 담임의 인삿말에 붙여 간단히 짧은 편지를 보내주시는 어머님들도 계신다.

 

 

위에 있는 "약속 어음"들은 지난 스승의 날에 아그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물론 난 어음을 부도냈을 때의 여러 가지 상황을 설명하고 난 뒤 이 어음을 받는다.

적어도 나에게 준 이 어음의 기한까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도 이야기 한다.

그 땐 그리도 심각하게 듣고 있던 녀석들이 어음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벌써 이 어음의 존재를 잊었단 말인가?.....

그래서 오늘 이 어음을 다시금 꺼내어 아그들에게 협박(?)을 했던 것이다.

 

"야~들아... 너그 내한테 준 이 어음 기억나나?"

아그들은 교실이 떠나갈 듯 소리친다.

"네~"

"우째 그 때까지 이 약속 지킬 수 있겠나?"

녀석들은 자신이 없는지 아까보다 대답소리가 훨씬 작아진다.

"와? 자신없나? 지금이라도 이 어음 찢어뿌까?"

아그들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친다.

"아니요 선생님 지킬 수 있어요."

"너그 30년이나 남았다고 괜히 해보는 말 아니제? 내 그때까지 두 눈 또록또록 뜨고 살아있데이."

나의 잔소리는 계속된다.

"너그들 이 약속 꼭 지켜야 된데이. 30년 후에 너그들이 어떤 곳에 있든지 간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할 수 있어야만 내하고 한 이 약속 지킬 수 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이 선생님과의 이 약속이 생각나겠나?"

아그들은 말이 없다.

그래..좀 더 바짝 쪼아야 해...ㅎㅎ

"그런데 요새 너그들 하는 행동 보면 좀 걱정된다. 내가 받은 이 어음이 우짠지 부도가 나 버릴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말이다."

"자기 앞에 놓여진 작은 일에서 부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앞으로도 훌륭한 사회인이 될 거 아니가?"

클클.... 나의 약발이 먹혀들어가고 있다.

녀석들은 고개를 떨구고 아무말이 없다.

더 이상 얘기하면 역효과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겠다.

 

오늘 하루 어쨌냐구?

물론 아주 좋은 환경(?) 속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난 매년 스승의 날에 아그들로 부터 어음을 한장씩 받는다.

학부모들의 스승이 아니기에 학부모로 부터의 선물은 사양이다.

며칠 전부터 미리 어머니들께 양해를 구하고 아그들에게 이 약속을 받아낸다.

가끔씩 졸업한 녀석들로부터도 자기의 어음 잘 간직하고 있냐는 연락을 받곤 한다.

해가 거듭될 수록 선물의 종류도 다양해 지고 선물의 단가(?)도 높아진다.

멋진 집을 지어주겠다는 녀석, 호텔을 통째로 지어주겠다는 녀석도 있었다....^^

 

이렇게 가끔씩 아그들의 어음을 꺼내보는 재미도 재미거니와 오늘처럼 아그들이 흐트러지고 산만한 행동을 보일 때 곧바로 '협박용 무기'로 둔갑하는 이 어음을 난 내년에도 당연히 받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집 내 책상 위 박스안에는 말 그대로 쑤씨방탱이(?)다.^^*

그래도 내가 이사갈 때 꼭 가져가야 하는 보물 1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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